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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폐지의 다사다난했던 역사

by 지식요정 2020. 12. 27.

유월절 폐지되었던 역사에 대해서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유월절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피로 세워주신 새 언약입니다. 또한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하시며 함께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절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워주신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유월절에 관해서 모르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이는 유월절이 주후 325년에 폐지되면서부터 서서히 잊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던 유월절, 그 폐지의 역사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초대교회의 진리, 유월절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성력 1월 14일 저녁, 목요일)에 성만찬을 하시고, 다음날인 무교절(성력 1월 15일,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교절 다음에 오는 안식 후 첫날(일요일)에 부활하셨습니다. 혹 어떤 분은 부활절과 유월절이 헷갈리시기도 하는데요. 부활절은 무교절 후 첫 일요일로써,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시기 전에 지키셨던 유월절과는 완전히 다른 날입니다(눅 22:15).

따라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성력 1월 14일 저녁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였고(고전 5:7, 11:23~26), 다음날인 15일에는 무교절을 지켜 금식하였으며(막 2:19~20), 무교절 후 첫 일요일에는 떡을 떼며 부활절을 지켰습니다(행 20:6~7, 눅 24:30~31).

유월절 폐지의 움직임-로마교회의 변질

사도들이 차츰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세계의 수도 로마에 위치한 로마교회의 주장이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로마교회에 노예나 하층민이 주류를 이루다가 점차 중류층이 입교하고, 나중에는 귀족들까지 입교하자 인근 교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떠나 곁길로 가기 시작하면서 유월절에 성찬식을 하는 것을 거부하고 유월절 다음의 일요일 즉,부활절에 성찬식을 하였습니다. 원래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닌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고전 1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교회는 엄연히 서로 다른 절기인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 절기로 합쳐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성찬식을 행하는 풍습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세 차례의 유월절 폐지 논쟁

제 1차 유월절 논쟁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교회의 새로운 전통은 예수님 때로부터 성력 1월 14일 저녁에 성찬식을 행하던 동방 교회와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는데요, 155년경에는 로마 교회 지도자인 아니케터스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던 폴리캅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폴리캅은 이 논쟁에서 자신이 여러 사도들과 함께 매년 유월절 곧 성력 1월(닛산) 14일을 지켜왔다고 하며, 유월절에 성찬식을 하는 것이 예수님 때로부터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했으나 결국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제2차 유월절 논쟁

이후 197년경, 유월절 논쟁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마교회 감독(오늘날의 교황)이었던 빅터는 유월절(성력 1월 14일 저녁)이 아니라 유월절 다음의 첫 일요일(부활절)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 '도미닉의 규칙(주의 규칙)'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교회에 강요하여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닛산 14일에 성찬식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일요일에 성찬식을 행하는 로마의 관습이 예수님의 규칙이라고 우겼던 것입니다.

이에 서방 교회들은 로마 교회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으나, 사도시대로부터 유월절 성만찬을 성력 1월 14일에 기념해 온 아시아 교회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 아시아 교회들을 지도했던 사도 빌립, 사도 요한, 그리고 여러 순교자들이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켰음을 말하고,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승을 따라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며, 유월절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빅터는 아시아 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 했지만,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만류로 파문 조치를 취소해야만 했습니다.

 

니케아 회의에서 유월절 폐지

여러분 혹시 니케아 회의 들어보셨나요? 세계사에서도 니케아 회의가 등장하는데요, 네. 바로 이 종교회의를 통해 유월절 폐지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앞서 아니케터스, 빅터 등 로마 교황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유월절을 없애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유월절 폐지의 논쟁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 분쟁의 불씨는 4세기에 다시 점화되었고 결국 사단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재한 니케아 회의를 통해 생명의 진리를 없애버렸습니다.

 

325년, 니케아 지방에서 열린 이 종교회의에서는 오랫동안 유월절 폐지를 원했던 로마교회의 주장대로 유월절 폐지를 결정하고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는 것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날짜는 춘분 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는 성경적 기준을 없애고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려고 하다 보니, 성경에 없는 '춘분 후 만월'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그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로마교회의 권력에 복종하지 않고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들은 이단으로 간주되어 박해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결국 사막이나 산중, 동굴로 숨어서 유월절을 지켜야 했습니다(교회사 초대편 283쪽 참고). 장차 사단이 하나님의 때와 법을 바꾼다는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단 7:25). 이렇게 새 언약 유월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가감하거나, 변경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면 저주를 받고 결국 천국의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계 22:18~19). 유월절 폐지의 역사는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이 유월절을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마지막 가르침을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